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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리뷰/나폴리

[Napoli/Naples] 나폴리와 카프리 섬 그리고 오베라는 남자

 2019년 7월 16일. 카프리 가는 배 안에서 할 게 없어서 리디북스 앱을 이용해 책을 읽었다. 기내 안에서도 꾸준히 읽었던 <오베라는 남자>라는 책을 펼쳤다. 꽤 많이 읽어놓은 터라 스토리가 끝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가 죽었다는 내용을 보고 조용히 눈물을 줄줄 흘렸다. 배 안에서! 세상에 이렇게나 감성적이라니. 그가 선천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든 후천적으로 학습된 성격이든간에, 나는 그가 타인에게 적대적으로 대할 때 마음이 아팠다. 성격이 소심한 나는 차마 그러지 못하지만 살아오면서 받는 상처들이 꽤나 많기에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공격과 아픔으로 점점 깊은 곳에 나를 묻혀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비록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을지라도. 모든 이가 세상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조금은 더 비관적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오베의 이야기도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이웃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며 진심으로 안도했다. 우리는 모두 희망 한 가닥을 잡으며 동화를 읽고 살아가니까. 너무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도중에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글귀들을 보면 울컥하지 않을 수 없다. 무던하지만 마음을 강하게 울리는 문장들이라고 해야하나.

 나폴리에 도착한지 겨우 이틀이 지났다. 루프트 한자 항공을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심하게 출발 지연이 되어서 경유편을 놓치고 말았다. 오후 4시 출발행이 9시발로 바뀌었다. 보상이라고는 고작 밀쿠폰 10유로 짜리. 뭐 덕분에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구경도 좀 하긴 했지만. 나폴리행을 탔는데 내 바로 뒷자석의 갓난배기가 내내 울었다. 사실 아기가 더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니, 애가 얼마나 힘들면 저렇게 한 시간이 넘게 악다구니를 쓰면서 울겠냐고. 물론 내 기분도 좋지만은 않았다. 밤늦게 공항에 도착해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그는 주소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출발했는데, 내가 불안해서 몇번이고 호스텔 이름과 주소를 말했지만 그래 알아, 하면서 내달렸다. 결국 이름만 비슷한 다른 휘황찬란한 호텔에 도착했고 나는 40유로를 내고서야 제대로 도착할 수 있었다. 젠장... 경유편 놓쳤을 때부터 뭔가 꼬였다 했다. 택시 기사는 몇번이고 미안하다고 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도착한 호스텔의 화장실은 매우 더러웠다. 심지어 변기 반대편에 샤워부스가 위치해 있었다니까. 호스텔을 다니면서 이런 결합형 화장실(?)은 처음 봤다. 내가 샤워하는 동안 누군가 거사를 치르면 그 향기가 콧속을 찌른다. 

 


 

 

 택시나 버스, 오토바이는 거칠게 내달리고 사람들은 그것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여유롭게 길을 건넌다. 역주행을 하기도 하고, 길이 막히기라도 하면 버스기사들은 창문을 열고 반대편 운전자에게 뭐라뭐라 고함을 지른다. 그들이 손을 이용하는 대화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코미디언들이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이탈리안들은 말 그대로 손으로 대화를 한다.

 나폴리 길가는 쓰레기들로 가득하다. 홍대 아침 거리보다 더 더러울지도 모른다. 관광으로 이 도시가 벌어들이는 수입이 어마어마할텐데 왜 이런 식으로 방치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생각을 조금 바꿔봤다. 아, 길거리가 이래도 관광 수입이 더 어마어마하니까 개선할 필요를 못느끼겠구나.

 어젠 카프리 섬에 가기 위해 매표소에 갔는데 표 하나를 달라고 하니 기다리라고만 했다. 그러고는 내 뒷사람들에게 표를 끊어주기 시작했다. 몇 번을 물어봐도 기다리라고 하다가 오른쪽으로 300미터를 가라고 해서 라인을 벗어났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아까 그 위치에서 표를 끊는 게 맞다고 했다. 나, 원래 큰 소리 잘 못내는 사람이다... 조금이라도 목소리 톤을 올리면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는 전형적인 소심 인간이다. 그런데 너무 화가 나서 매표소 직원이랑 싸웠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다른 이탈리아인이 아까는 시간이 임박한 배편을 사는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준 거라 말해줬다. 그녀도 매표소 직원의 태도가 옳지 않다며 나를 위로해줬다. 결국 표를 끊긴 했는데 거의 집어 던지듯이 전해주더라. 배 출발 1분 전에 표를 파는 게 정상적이냐? 난 그냥 직원한테 내 권리에 대해 주장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카프리 섬에서 먹은 파스타와 피자는 최악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구글 평점 1.3에 달하는 쓰레기 식당이었다. 위치빨로 돈 벌어먹는 식당인 셈이다. 로밍도 터지지 않아서 유심을 새로 사야했다.

 

 택시를 타고 아나카프리로 이동했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또 역시나 거칠게 올라가는데 마치 액티비티를 하는 느낌이었다. 창문이 아예 없고 사방이 뚫려있어 시원했다. 아나카프리에서 리프트를 타고 또 한참을 올라가면 카프리섬 가장 높은 곳에서 전망을 볼 수 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그 리프트가 공포 그 자체였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거의 눈을 감고 있거나 하늘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래도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전경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 전까지 누적되었던 짜증들이 싹 가셨다. 거기 올라가지 않았다면 카프리섬 간 것 자체를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돌아가는 배를 타기 전 자갈이 깔려있는 해변가로 가서 수영을 했다. 수영복이 없어서 입고 있던 원피스를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갔다. 뒷일은 미래의 나에게 맡기라지. 파도가 칠 때마다 자갈들 사이로 물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물이 자갈들을 두드리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르르륵... 

 

 여행 초반부터 너무 많은 것을 겪다보니 나폴리 인상이 그닥 좋지 않았다. 스스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되뇌었지만 별로 도움은 안되었다. 뭐 그래도 사람들 인심은 참 좋다. 어젠 데이터가 아예 터지질 않아서 물어물어 길을 찾아가야 했는데 영어를 잘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최선을 다해 도와주려고 한다. 목소리가 엄청 커서 저 멀리 있는 사람들까지 합류해서 길을 찾아주려 애쓴다. 그들 서로도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아 추파도 많이 받는다. 버스를 기다리자면 옆에 있는 중년 남자들이 빤히 쳐다보다 뷰티풀! 이 한 마디를 내뱉는다. 그냥 동양인 여자이기만 하면 캣콜링을 서슴없이 내뱉는다고 들어서 개의치 않았다. 내가 '너넨 어쩔 수 없구나'하는 표정을 짓고 팔을 양옆으로 벌리는 제스쳐를 취하면 그 사람들도 그냥 허허 웃어 넘긴다.

 어제 먹은 젤라또와 레몬 샤벳, 아란치니는 참 맛있었다. 오늘은 Trippa con limone라는 이름을 가진 소 내장 수육 요리를 먹었다. 염장되어 있던 거라 조금 짰지만 레몬즙을 뿌려 먹으니 잡내가 없고 깔끔해서 맛있었다. 식당엔 손님들보다 객식구들이 더 많았다. 그들 모두가 친절해서 기분이 좋았다. 이번엔 구글맵에서 평점을 제대로 보고 찾아갔지. 4.6점이었다. 음료까지 해서 총 6유로밖에 나오지 않았다.

 

 

거리를 한참 걷다 에스프레소 가게에 들어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에스프레소는 진짜진짜 맛있다. 어제는 하루 종일 걸어다녔으니 오늘은 박물관이나 가서 쉬엄쉬엄 다녀야지.

 


 

 이 날, 나는 Museo Cappella Sansevero에 가서 Cristo Velato, 베일을 쓴 예수 조각을 보았다. 

 

https://www.museosansevero.it

 

 신을 믿지 않지만 조각을 보는 순간은 몸에 전율이 흘렀다. 정말 습하고 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보고 있고만 싶었다. 이건 정말 실물로 봐야 한다. 말로 이 정교한 아름다움을 묘사할 수가 없다. 누군가 이것만을 보러 나폴리에 올 가치가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