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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업무
[독일 이사] Hermes와 DHL 택배로 이사하기
한국에서는 일반적인 포장이사가 없는 독일에서(상자나 짐을 집까지 옮겨다주는 서비스는 따로 있지만) 가장 싸게 이사할 수 있는 방법은 물론 택배를 보내는 것이다. 독* 배송대행에서 이사 서비스를 하고 있긴 하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견적 요청을 해봤는데 700유로가 나왔다. 식겁하며 포기. OBI에서 Umzugskarton을 세개 샀고, 총 보낸 택배 갯수는 다섯개다. 그 중 세개는 DHL을 통해, 나머지 두개는 Hermes를 통해 보냈다. 두 택배사의 기준이 다르니 그에 맞춰 보내면 된다. Hermes의 경우 무게 제한은 덜하지만, 부피에서 엄청난 제약이 있다. Seite ~ bis ~ cm는 가로 세로를 모두 포함한 길이이니 주의하도록 하자. 무거운 짐을 보내고 싶은데 짐의 부피가 작은 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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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때 쓰는 일기
임동혁 피아니스트에 대한 추억 하나
가끔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감사할 때가 있는데 오늘이 또 특히 그랬다. 이 채널, 레이어스 클래식의 최근 영상인 곡을 듣고 바로 구독 버튼을 눌렀다. 비틀즈, 이루마 등등 예전에 많이 듣던 노래들이 흘러나오길래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염없이 들었다. www.youtube.com/watch?v=YrNURj4cHQ 중학교 음악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임동혁 피아니스트의 연주 영상을 보여주신 적이 있다. 반 친구들은 그의 집중한 표정에 웃음을 터트렸지만 나는 그 순간부터 임동혁을 좋아하게 됐다. 그건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팝송과 락의 세계를 지난 후 다시 시작한 덕질의 순간이었다. 한달 용돈이 3만원이었을 시절, 다른 것들을 포기하고 그의 음반들을 사들였었다. 집에서 공부할 때면 늘 그의 쇼팽을 틀어놨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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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준비와 정착 초반 (2017)
[독일 문화] 독일에서 겪었던 생소한 경험들 | 문화 차이
독일에 오기 전, 내가 맞닥뜨려야 하는 이 나라가 어떨지에 대해서 찾아보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물어도 봤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 전해 듣는 모습은 막상 접하는 것과는 괴리감이 있기 마련이다. 오고나서 겪었던 '문화 차이'를 나열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지금 막 생각나는 걸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 개인적 견해가 섞여있음 * 1. 화장실 세면대에서 양치질을 하지 않는다. 이건 독일에서 뿐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도 해당되는 일인 것 같다. 나는 점심을 먹고 나면 늘 개인 칫솔을 들고 다니며 양치를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과의 스페인 친구가 내가 양치하는 것을 보더니 황당해하면서 뭐하냐고 묻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 그랬는데, 독일의 공공장소 세면대에서 양치를 하는 것은 세면대에서 발을 닦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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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준비와 정착 초반 (2017)
[독일 대학원 합격] 출국 준비 하기
5~6월까지 대학 지원을 얼추 마무리하고 그 후에는 남은 기간 동안 할 인턴십을 찾았다. 인턴 지원도 그 랩의 주제에 맞게 지원 동기서를 쓰고나서 합격 발표를 받았다. 7월 들어 6주 동안의 인턴십을 시작했었기 때문에 그 때부터는 유학에 집중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원래 문과인간이던 내가 웻랩에서 실험과 분석을 하며 보고서를 쓰고 있자니 조금은 버거웠지만 굉장히 흥미진진한 하루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인턴 끝날 때 즈음 학교 발표가 난다고 했으니까... 8월 중순까진 잊어버리고 있자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지원 마감 기한 이틀 전에 합격 발표를 받았다. 실험을 막 끝내고 랩에 돌아와 무심코 메일을 봤는데 저 소식이 와 있었다. 심지어 푸쉬 알림도 설정해놨었는데 알람이 안와서 아예 모르고 있었다. I 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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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때 쓰는 일기
김윤아의 Going home과 유튜브 댓글로 위로받다
나는 유튜브에 댓글을 잘 달지 않는다. 좋은 내용이 아니면 굳이 비판적인 댓글을 달지 않는다. 아니 사실 그냥 인터넷 기사나 영상 모두에 댓글을 잘 달지 않는 편이라는 게 맞겠다. 툭하면 다른 사람 의견에 빈정대거나 우르르 몰려가 마녀 사냥을 하는 인터넷 문화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문화'는 21세기 초반부터 시작됐는데, 막 인터넷이 전국적으로 활성화되던 때였으므로 통신망 법이 전무했던 시기였다. 보아가 2000년 어린 나이에 데뷔한 후로 나는 보아 안티 사이트가 설립된 걸 봤었다. 그때는 네이버나 다음 카페에서 시작되었다기보단 개인 사이트 도메인을 등록해 정성스럽게(;;) 악플을 쓰고 루머를 퍼트리는 방식이었다. 실질적으로 동조한 건 아니었지만 확고한 가치관이 형성된 상태가 아니었던 8살의 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