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에서 산다는 것
[안톤 버그] 여러 가지의 술이 들어간 초콜릿
예전에 유튜브에서 후기를 봤던 기억이 있는 안톤 버그를 페니 마트에서 찾아냈다. 술이 들어있는 초콜릿으로 유명하다. 위스키, 럼, 보드카 등 종류도 다양하게 들어있다. 4.99유로에 득템했다. 아참 해리포터 레고도 크리스마스 한정으로 팔고 있던데, 비싸기로 유명한 레고답게 손바닥만한게 20유로더라... 포기... 차라리 그 돈으로 어드벤트 캘린더를 사고말지. 어제도 커피에 초콜릿 하나씩을 까먹었다. 음 그리고 당연히 저걸 먹는다고 취하지는 않는다. 다 모아봐도 한 모금이 될까. 나름 여러 가지의 술을 맛보는 재미가 있다. 포장을 벗겨내고 병 모양 밑 부분을 깨물어 옾픈한다. 그러면 액체 상태의 술이 들어있는 걸 볼 수 있다. 술은 아주 살짝 고여있는 수준이다. 호록 맛을 본 뒤 초콜릿을 먹으면 달콤쌉싸름..
-
그때그때 쓰는 일기
임동혁 피아니스트에 대한 추억 하나
가끔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감사할 때가 있는데 오늘이 또 특히 그랬다. 이 채널, 레이어스 클래식의 최근 영상인 곡을 듣고 바로 구독 버튼을 눌렀다. 비틀즈, 이루마 등등 예전에 많이 듣던 노래들이 흘러나오길래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염없이 들었다. www.youtube.com/watch?v=YrNURj4cHQ 중학교 음악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임동혁 피아니스트의 연주 영상을 보여주신 적이 있다. 반 친구들은 그의 집중한 표정에 웃음을 터트렸지만 나는 그 순간부터 임동혁을 좋아하게 됐다. 그건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팝송과 락의 세계를 지난 후 다시 시작한 덕질의 순간이었다. 한달 용돈이 3만원이었을 시절, 다른 것들을 포기하고 그의 음반들을 사들였었다. 집에서 공부할 때면 늘 그의 쇼팽을 틀어놨었..
-
행정 업무
[독일 이사] Hermes와 DHL 택배로 이사하기
한국에서는 일반적인 포장이사가 없는 독일에서(상자나 짐을 집까지 옮겨다주는 서비스는 따로 있지만) 가장 싸게 이사할 수 있는 방법은 물론 택배를 보내는 것이다. 독* 배송대행에서 이사 서비스를 하고 있긴 하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견적 요청을 해봤는데 700유로가 나왔다. 식겁하며 포기. OBI에서 Umzugskarton을 세개 샀고, 총 보낸 택배 갯수는 다섯개다. 그 중 세개는 DHL을 통해, 나머지 두개는 Hermes를 통해 보냈다. 두 택배사의 기준이 다르니 그에 맞춰 보내면 된다. Hermes의 경우 무게 제한은 덜하지만, 부피에서 엄청난 제약이 있다. Seite ~ bis ~ cm는 가로 세로를 모두 포함한 길이이니 주의하도록 하자. 무거운 짐을 보내고 싶은데 짐의 부피가 작은 편이라면..
-
독일에서 산다는 것
[병원 가기] 독일의 이비인후과, Hals-Nasen-Ohren Arzt 가기 | 돌발성 난청
어느 날 잠에서 깨 일어나보니 왼쪽 귀가 잘 안들렸다. 꼭 비행기를 타고 고도에 접근할 때처럼 멍멍해지는 그 느낌이 들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하루 종일 그 상태가 지속되니 굉장히 불편했다. 이런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증상을 검색해보니 돌발성 난청일 수도 있다는 정보들이 보였다. 돌발성 난청은 원인 불명으로 갑자기 한쪽 귀나 양쪽 귀의 청력이 떨어지는 증상을 보이며 응급 질환에 속한다고 한다. 병원을 빨리 가야하고, 치료 시기를 놓치면 영구 난청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을 보자마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심지어 바로 다음 날엔 집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어서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아니 그건 그렇고 테어민을 일주일 내에 잡을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어쨌든 예매한 버스를 타고 몇 시간 동안 이사갈 ..
-
그때그때 쓰는 일기
김윤아의 Going home과 유튜브 댓글로 위로받다
나는 유튜브에 댓글을 잘 달지 않는다. 좋은 내용이 아니면 굳이 비판적인 댓글을 달지 않는다. 아니 사실 그냥 인터넷 기사나 영상 모두에 댓글을 잘 달지 않는 편이라는 게 맞겠다. 툭하면 다른 사람 의견에 빈정대거나 우르르 몰려가 마녀 사냥을 하는 인터넷 문화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문화'는 21세기 초반부터 시작됐는데, 막 인터넷이 전국적으로 활성화되던 때였으므로 통신망 법이 전무했던 시기였다. 보아가 2000년 어린 나이에 데뷔한 후로 나는 보아 안티 사이트가 설립된 걸 봤었다. 그때는 네이버나 다음 카페에서 시작되었다기보단 개인 사이트 도메인을 등록해 정성스럽게(;;) 악플을 쓰고 루머를 퍼트리는 방식이었다. 실질적으로 동조한 건 아니었지만 확고한 가치관이 형성된 상태가 아니었던 8살의 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