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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살이/독일에서 산다는 것

생일 기념으로 독일에서 해먹는 마라탕

 오늘은 독일에서 세 번째로 맞이하는 저의 생일입니다. 여건이 된다면, 혼자 생일을 맞이하더라도 제대로 된 요리를 제 자신에게 대접하는 편입니다. 

 

 

 어제는 생일을 경건한 자세로 맞이하기 위해, 노래만 불러댔던 마라탕을 직접 해 먹어 보기로 했습니다. 요즘 집 밖으로 거의 안 나가는데 아시안 마트를 가기 위해선 많이 걸어야 했습니다. 마스크가 없어 목도리를 칭칭 감아 코와 입을 가리고 외출했습니다. 몇몇 무리들은 그런 저를 보고 웃거나 일부러 기침을 하며 지나가긴 했지만, 저는 비웃음에 신경 쓰는 것보다 제 건강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 도시에선 처음으로 마스크를 쓴 할머님을 보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이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아시안 마트에서 일하는 중국인 분들은 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아시안 마트에서 마라탕 소스와 기본 재료들을 사고 돌아왔습니다. 기름을 두르고 소스를 볶은 후 물을 붓고, 끓는 탕에 손질한 야채와 고기를 넣어 익히면 마라탕이 됩니다. 저는 숙주, 청경채, 팽이버섯, 파, 납작 당면 그리고 냉동 대패 소고기를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분명히 건두부를 구매했던 것 같은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없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쉬운 걸 이때까지 시도해보지 않았다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냥 끓이기만 하면 되더군요. 평소엔 가격이 비싼 재료는 사지 않았기 따문에 시도해보려는 생각조차도 못했는데, 역시 생일이라는 특별한 날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냄새가 부엌에 꽉 차버릴까봐 연결된 테라스 문도 열고 환기풍도 돌렸습니다. 플랫 메이트 중 하나는 본가로 간다고 했습니다. 통행금지가 되면 마당이 있는 본인 집에 있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다면서요.

 

 비주얼이 좋다며 칭찬받은 수제 마라탕입니다. 원래는 술을 안 마시지만 이날만큼은 (생일 전날이었지만) 저를 위해서 축배를 들고 싶었습니다. 달달한 화이트 와인을 한병 땄습니다. 그런데 술을 안 마시는 버릇이 드니, 한두 잔 하니까 질려서 더는 못 마시겠더라고요.

임시 탁자입니다. 제 친구가 만들어줬습니다. 귀엽죠.

 

 처음으로 만들어본 마라탕은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습니다. 이 맛있는 걸 이제 접하다니, 저보다 일이 년은 먼저 먹어본 한국인들이 부러웠습니다. 제가 손이 커서 거의 4인분을 만들었기에 남겨서 두고두고 먹는 중입니다. 미역국을 끓이려고 미역도 사뒀는데 아마 마라탕을 다 먹기 전까진 못 끓일 것 같습니다. 어제저녁으로도 먹고 아침으로도 먹었는데 먹을 때마다 맛있습니다.

 이러다가 나트륨 중독이 올까봐 조금은 무섭습니다. 원래 싱겁게 먹는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갑자기 짜게 먹어서 그런지 플랫 메이트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구역감도 약간 올라왔었고 (아니면 플랫 메이트가 말이 너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도중에 화장실 간 건 조금 미안했습니다.) 어제 잠도 설쳤습니다. 계속 가위에 눌리더라고요. 간신히 깨서 물을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편안하게 잠들었습니다. 오늘은 물을 많이 마셔야겠습니다.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아래와 같은 사진을 공유했었습니다. 제 상황과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밈짤?이었죠. 이에 공감해서 난생처음으로 디엠을 보내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들도 아마 파티 계획을 모두 취소해야 했을 겁니다. 저도 조촐한 파티를 해보려고 했으나, 시기가 시기인지라 모든 계획을 파했습니다. 오히려 친구가 아쉬워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뭐 전 괜찮습니다. 독일 오고 나서는 제대로 생일을 기념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냥 담담하고 익숙합니다.

 

 

 축하 메세지들을 많이 받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탄뎀 친구도 지코의 아무 노래 뮤비를 공유하며, 생일을 더 특별하게 보내기를 바란다고 말해줬습니다. 노래는 들어봤는데 뮤비는 처음 봤습니다. 사실 저도 너무 북적북적한 걸 별로 안 좋아하는지라 뮤비를 보며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하루에 케이크 세 개를 받았던 예전의 기억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주인공이 아니란 것을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다들 짠 것 마냥 이모티콘 선물들을 해주었습니다. 아무래도 기프티콘은 제가 쓸 수 없으니까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겠죠. 친구들은 해줄 게 없어 미안하다고 했지만, 저는 생각해준 것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엄마와도 오랜만에 영상 통화를 했습니다. 모두에게 축하를 받을 수 있어서 오늘은 충분히 특별한 날입니다. 

 

항상 응원해주는 고마운 S.

 

 마트를 여는 시간인 오전 7시 전에 나가 기다렸다가 들어갔는데도 여전히 휴지칸은 비워져 있었습니다. 아마 사재기가 본격화되면서부터 마트 자체에서 수량을 조금씩, 자주 푸는 듯했습니다. 세 군데를 돌아다닌 후에야 가까스로 하나를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세 번째로 간 마트도 휴지 칸이 비워져 있었는데, 20분 넘게 발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기적적으로 추가 재고를 얻게 되었습니다. 휴지 값이 오른 건지, 아니면 REWE에서 구매한 것이라 비싼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2.95유로에 샀습니다. 

 

 

 제가 유행을 쫓는 스타일이 아니라 이걸 ((달고나 커피)) 해먹을 줄은 몰랐는데요, 어느새 쉐킷쉐킷 하고 있었습니다. 무료함은 귀찮음도 이기는가 봅니다. 그렇다고 팔 빠지게 젓고 싶지는 않아서 병에 담아 흔들어 만들었습니다. 엄청 맛있는 맛은 아니지만 나름 마실만 합니다. 

 

 

 벌써 집에만 있게 된지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알차게 지낼 줄 알았는데 먹고+보고+자고의 반복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음 주부턴 제대로 살아야겠습니다. 저는 항상 이렇게 미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