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시험공부를 하고, 10시에 교수님 오피스에 가서 구술시험을 봤다. 두 번째 구술시험이었지만 여전히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항상 느끼는 거지만 무슨 법칙이라도 있는 거마냥 가볍게 지나간 부분은 꼭 깊게 파고드는 질문을 하신다. 랜덤 포레스트, bagging 등. 그래도 결국 시험 패스는 했다. oral exam이기 때문에 교수님과 조교가 3분 정도의 상의 후 결과를 바로 말해준다. 정말 놀랬던 건 원래 30분 동안 치러지는 시험인데 나와보니 1시간 10분이 지난 시점이었다는 것. 진이 쭉 빠지고 두통이 엄습해왔다. 어쨌든 걱정하던 시험이 이사하기 전에 끝났다. 그 사실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시험을 끝내고 나오자마자 OBI에 가서 이사용 박스인 Umzugskarton을 샀다. Größe M 사이즈로 세 개를 샀는데 아무래도 턱도 없는 것 같다. 생각보다 집에 있는 짐이 많았다. 박스는 한 개당 2.79유로.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젖어가는 박스를 들고 집에 왔다.
다른 가구들은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없어 그냥 정해진 곳에다 버리기로 했다.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기숙사에서 따로 지정한 Sperrmüll 장소가 있다. 한 달 동안 이걸 어떻게 버리나 고민하다가 이베이에 kostenlos로 올릴 타이밍도 놓쳤고, Sperrmüll Tag이 아니면 돈을 내고 버려야 한대서 이걸 어떻게 버리나 싶었다. 다행히도 어제 플랫메이트가 도와줘서 테어민을 미리 잡아놨고, 그 시간에 맞춰 책장과 램프, 의자를 짊어지고 갔다. 플랫메이트들이 총출동해서 도와줬다. 비도 내리는데 무거운 것들도 괜찮다고 옮겨줘서 정말 너무 고마웠다. 우리는 물건들을 제자리에 놓고 나서 마트로 향했다. 오늘이 바로 저녁을 같이 먹는 날이었다.
불고기를 하기 위해 Oberschalen 600g을 1mm 정도로 얇게 썰어달라 했고, 파프리카와 양파, 당근, 주키니를 샀다. 고기 600g이 그렇게 많은 양일 줄은 몰랐네. 항상 300g 정도만 샀었으니까. 내가 계산하는데 애들이 나중에 정산하자고 그러는 걸 내가 됐다고 그랬다. 얘넨 괜히 미안해했는데 어차피 내가 재료 사고 요리할 생각이었어서 나는 정말 괜찮았다.
집에 도착해서 밥을 안쳐놓고 불고기를 시작했다. 플랫메이트들은 알아서 재료들을 썰고 있었다. 이건 길게 썰까, 아니면 다질까? 하고 물어보는데 고맙고 또 한편으론 눈치가 있다 싶었다.
나는 얇게 썰린 고기에 간장을 붓고 설탕을 한 숟갈 정도 부었다. 그리고 사과 소스인 Apfelmus를 넉넉히 넣고 버섯과 양파를 추가했다. 불에 올리기 전에 참기름도 한 바퀴 둘렀다. 솔직히 자신 없었다. 불고기를 만들어 본 적이 있어야지... 아무튼 양념된 고기를 볶으면서 동시에 주키니와 양파를 볶았다.
밥이 다 되었길래 접시들에 나눠 담고 그 위에 볶은 주키니, 양파와 여러 채소들을 올렸다. 비빔밥을 해주기 위해서다. 파프리카와 양배추, 당근은 볶지 않고 그냥 밥 위에 올렸다. 사실 당근은 볶으려고 했는데 깜빡했다. (생당근도 맛있더라)정점으로 계란후라이를 해서 그 위에 올리고 참기름을 둘렀다. 고추장은 너네가 알아서 양 조절해라 하고 식탁 위에 뒀다. 불고기가 다 익어서 그릇에 따로 담아 비빔밥과 식탁에 올려두니, 한 상 가득히 차려졌다.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데. 카메라 들이대긴 좀 그러니까.
고추장이 조금 맵다고 경고하니까 이 친구들이 지레 겁을 먹고 아주 소량만 덜어갔다. 그런데 결국 나중엔 맛있다며 조금씩 더 덜어먹더라. 아무래도 매운 것에 대한 면역이 없다보니 경계를 하는 것 같다. 한 친구에겐 예전에 내가 불닭볶음면을 준 적이 있었는데 먹어봤냐고 물어보니 도저히 용기가 안나서 시도를 못했다고. 언젠가는 꼭 시도해볼 거라고 했다. 그런데 나도 불닭은 너무 맵다고 말하니 좌절하더라. 그녀가 빠른 시일 내에 용기를 얻게 되길.
대망의 불고기! 맛있다고 하길래 나도 한입 먹었는데 진짜 맛있어서 스스로 감동했다. 아, 설마 진짜 불고기 맛이 날 줄이야... Apfelmus를 썼던 게 신의 한 수였다. (Apfel과 Birne 섞여 있는 제품) 비빔밥이나 불고기나 적지 않은 양이었는데 그릇을 싹싹 비워줘서 고마웠다. 특히 한 친구는 입맛이 약간 까다롭다고 하길래 걱정했는데 엄청 잘 먹어줘서 뿌듯했다. 나중에는 얘들이 한 그릇 다 먹고도 불고기를 또 리필해서 먹더라고. 마 이게 K 푸드다! 고추장을 어디서 사냐고 묻기에, 어차피 이사갈 때 이것까지 들고가면 무거울 거 같으니 두고 가겠다고 했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자주 해줄걸.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도 쉴새없이 얘기하고, 아이스크림을 후식으로 먹으며 또 얘기를 했다. 내 바로 옆방에 사는 친구는 너무 바쁘고 수줍음도 많아서 일주일에 한번 볼까말까 한 친구였는데 (얼굴을 봐도 인사만 하는 사이), 수학과 프로그래밍을 좋아한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일년 반을 같이 살았는데 말이지. 원래 얘기도 자주하고 친하게 지내던 다른 친구는 월요일까지 남자친구 집에 있을 거라길래 내일 마지막 인사를 하기로 했다. 나는 내 요리를 잘 먹어줘서 고마웠는데 플랫메이트들은 요리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아무튼 서로 기분 좋은 저녁이다.
솔직히 아직도 실감이 안나긴 한다. 너무 피곤해서 오늘은 짐을 못쌀 것 같고, 내일부터 주말 내내 짐 정리해서 월요일 아침에 택배로 보낼 생각이다. 마지막은 좋은 기억들로만 채우고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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