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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살이/유학 준비와 정착 초반 (2017)

[집 구하기] 2주 동안 집을 구해야 했던 독일에서의 첫 발걸음

 독일에서 제일 힘들었던 것을 고르라면, 집을 구하려 애썼던 그때를 떠올릴 것 같다. WG-gesucht를 통해 메일을 몇십 통 넘게 보내도 돌아오는 답장은 두세 개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Unfortunately... 로 시작되는 거절 내용이었다. 집과 관련한 곳이라면 다 찾아봤지만 그 여정은 험난했다. 

 

 인터뷰는 총 세번을 보았다. 한번은 조금 멀리 위치해 있고 남자 한명이 거주하는 집이었다. 한국에서 독일로 출국하기 전에 통화를 하며 잡아놓은 인터뷰였는데, 인터뷰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조금 안심하고 있던 찰나였다. 에어비앤비에서 머무르면서(그 와중에 에어비앤비도 세 군데를 옮겨다녔다) 그 남자 집으로 인터뷰를 보러 갔다. 남자는 보눙(집) 하나를 다 렌트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제시하는 미테 값은 쌌지만 계약 조건이 아무래도 조금 이상했다.

 첫 번째, 문을 항상 닫아 놓지 말 것. 같이 사는데 조용한 건 이상하므로. 두 번째, 일주일에 한두 번은 같이 맥주를 마실 것. 세 번째, 집 주인에게는 너를 내 여자친구라고 말하게 해줄 것. 자기가 빌린 집에서 또 다른 세입자에게 돈을 받는다는 것이 밝혀지면 곤란하니까. 걱정하지 마라. 1년 넘게 나와 같이 산 여자 세입자과도 아무런 트러블 없이 잘 지냈었다. 

 이 얘기들을 듣는데 얼마나 심란하던지. 조금 있으면 개강인데 당장 들어갈 집이 없어 어떡하나 싶었다. 그리고 그는 말이 정말 x 100000 많았다. 1시간 넘게 자신의 얘기를 떠들어댔다. 자기는 맥도날드에서 일하고 있고, 본인도 독일인이 아니다. 그래도 독일어를 배워서 이제 곧잘 구사하곤 한다 등등. 넘치는 TMI들에 괴로워하다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일단 생각을 해보겠다 하고 나왔지만 이건 아니라는 결심이 섰다. 나중에 그에게 왓츠앱으로 미안하지만 계약할 수 없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쉽지만 뭐 어쩔 수 없지 하고 답장했다.  

 

 두 번째 집은 꽤 큰 가정집이었다. 내가 그 집에 딸린 지하실에 들어가는 조건이었다. 고상하게 생긴 아주머니와 딸, 고양이들이 있는 집이었다. 여기도... 평범한 곳은 아니었다. 예전 세입자가 너무 오래 샤워를 했다며 나에게는 20분 이상 샤워하지 말 것을 권했다. 결국 아주머니는 말이 통하는 독일인 학생을 받기로 했다고 연락 하셨지만 지금 생각하면 안 들어가서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세 번째로 인터뷰를 본 곳은 학생들끼리 모여사는 WG였다. 남자 둘에 여자 한 명이 있는 곳이었는데 역시나 내가 독일어를 못하니까 반기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인터뷰를 보고 헤어질 때 내가 습관적으로 입에 붙은 See you! 로 인사를 건네니 서로 얼굴을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워서 뒤늦게 I hope... 이라고 하니 다들 웃긴 했지만 무언의 반대로 받아들이고 일찌감치 체념했다. 아무리 독일인이 솔직하다지만 그런 무례한 반응은 익숙해질 수 없는 것 같다. 

 

 기숙사? 기숙사는 이미 두달 전에 신청했지만 웨이팅 리스트에 올라있는 상태였다. 한번 오르면 언제 내 순서가 올지 모르는. 교환 학생들은 기숙사에 잘만 들어가던데 이제 막 입학하는 석사라 얄짤없는 것이었나? 다시 한번 소속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2주가 지나서야 찾은 머무를 곳은, GSG라는 주택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아파트먼트였다. GSG는 학교의 international student를 관리하는 사람이 알려준 곳이었다. 그때 마침 나있는 자리가 딱 한 군데 있었고 나는 바로 계약하겠다고 말했다. 집을 볼 때 같이 본 사람은 나 외에도 두 명 더 있었지만 다들 계약을 안하겠다고 해서 결국 열쇠는 나에게 오게 되었다. 하지만 가구가 하나도 없는 방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이케아를 들락날락해야 했던 뼈아픈 기억이 있다.

 

 

이 곳이 독일에서의 내 첫 집이자 방이었다. 

 

 

 

 

아무것도 없어 매트리스만 덩그러니 놓아뒀던 방. 심지어 천장에 전등도 없었다. 원래 이사갈 때 다들 전등까지 빼간다고는 하지만...

 

 

 

 

 책상이 필요해서 밤새도록 이렇게 책상을 직접 조립한 적도 있었다. 지금이라면 그냥 돈을 더 내고 완제품을 살 것이다. 

 

 

 

 

 이 아파트먼트에서 6개월을 살고 난 후, 기숙사 웨이팅 리스트 순서가 돌아와서 바로 이사를 했다. 기숙사는 가격도 싸고 학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였으니 거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곳이었다. 그 전의 집에서 살 땐? 하이쭝(히터 시스템)을 항상 끄고 지냈고 왠만하면 전기도 아껴 썼다. 전기세 등 내야하는 공과금이 꽤 쎘기 때문이다. 모자를 쓰고 여러 겹 껴입고 자던 때가 생각나서 눈물겹다. 그렇게 아낀 덕분에 나중에 조금 돌려받기는 했지만. 지금 살고 있는 기숙사에서는 맘껏 켜놓고 따뜻하게 지내고 있다.

 

 이번에 이사할 집을 구할 때도 역시나 영어로 문의해서인지 답장이 거의 오지 않았다. 한 군데에서 인터뷰를 보러오겠냐는 제의를 받았고, 바로 며칠 후에 버스를 타고 7시간을 가서 인터뷰를 봤다. 운 좋게도 합리적인 월세의 집을 한번만에 구하게 됐고, 계약서 외 다른 문서들도 우편으로 주고받아 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새 도시에서의 집은 또 어떨지 굉장히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