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후로부터 <기생충>의 독일 개봉을 손꼽아 기다려 왔었다. 10월 중순이 되자 독일에서의 개봉 소식이 들려왔다. 독일에 온 후로 한번도 영화관에 간 적이 없었는데 오로지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첫 영화관 나들이를 감행했다. 한국에 잠깐 갔을 때조차 인턴십을 하느라 시간이 없었으므로 거의 2년만에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였다. 일단 온라인으로 자막 버전을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아 티켓을 예매했다. 대부분의 외국 영화들은 독일어로 더빙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고 등장인물들이 대사를 시작하자마자 나는 '새됐다'... 분명히 자막 버전으로 예매했는데도 불구하고 다들 독일어로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아씨 어쩐지 극장 안에 동양인이 한명도 없더라.
이미 영화는 시작되었고, 가장 안쪽 자리(심지어 벽이 있는)에 앉아 있어서 나갈 수도 없었다. 몇 분 정도는 집중도 안되고 패닉이 되어 있었으나 이미 돈도 냈으니 최대한 편한 마음으로 보자고 생각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대사는 아주 가끔 나왔고 자연스럽게 영상미에 집중하게 되었다. 관객들은 중간중간 웃고, 경악했다. 나는 웃진 못했지만 같이 경악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기생충 한국어판을 찾아봤다. 다행히도 이미 한국에서 개봉한지 꽤 되어 네이버 시리즈에서 PC 전용으로 다운받을 수 있었다. 그땐 만원 주고 구매했는데 지금 가격을 보니 2,500원이네 하하. 아무튼 그 자리에서 바로 다운받아 또 다시 처음부터 관람을 했다. 역시 내용을 완전히 알아듣는 것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사이다를 마신 기분. 결국 나는 기생충을 보기 위해 2만원 가량을 쓴 셈이었다.
요즘들어 뻔하지 않은 드라마나 영화를 찾아보기란 참 어렵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시나리오들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일단 '소재의 참신함'에서 눈을 뜨게 해준다.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중구난방이 아니고 명확하다. 평론가든 일반 영화 관람객이든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영화를 예술 영화라기보단 상업 영화로 구분하는 것 같던데, 나는 그저 설명이 쉬운 영화라 해서 상업적인 영화가 된다는 점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항상 난해하고 투박해야만 예술 영화가 되는 걸까?
또 다른 관점으로 '기생충'을 비판하는 의견들을 봤다. 봉감독은 좋은 대학의 사회학과를 나왔고 부유한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난에 대한 상상력이 빈곤하다는 내용이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기택네가 사는 집 뿐만 아니라 그들의 '빌붙음', '사기꾼적인 면모' 등이 그러하다는 것이었다. 세련된 카메라 워킹으로 그들이 빈민층을 표현하는 너절한 방식을 숨기려 한다 했다.
또다른 몇몇은 엔딩이 불쾌하다고 했다. 결국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한 사람은 가난을 떨쳐낼 수 없는 거냐고. 운좋게 또는 사기를 쳐서라도 얻은 자금의 여유도 종내 사라지는 거냐고.
판타지이기도 하지만 하이퍼 리얼리즘인 영화 기생충. 나는 아직 세상을 100퍼센트 알지 못하고 경험도 부족해서 그 의견들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반드시 있을 것이므로. 내 의견이 확고하다 한들 그 영역에 대해서 함부로 얘기하는 것은 또 다른 기만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감독의 의도가 그러한 부류들이 아니었다는 걸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다. 그는 개인에게 문제를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들이 그렇게까지 일을 벌여야 했는지 세상이 만들어놓은 계급의 형태에 대해 비판하는 시각을 담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어떤 영역에 속해 있는 사람들만이 본인들의 문제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것일까? 백인은 흑인 역사에 대한 영화를 만들 수 없고 남자는 여자에 대한 영화를 만들 수 없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가 없었다면 사회 문제에 대한 환기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고 또 고통받는 것이 피씨와 언피씨함의 경계선인데 중립에 서면 사람들이 줏대가 없다고 하고, 어느 한 극단으로 치우쳐지기엔 내 성격과 맞지 않아 그것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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