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본 영화도 꽤 오래된 영화다. 2008년도에 개봉을 했으니 그로부터 무려 12년이 된 영화인 것이다. 10년이 넘게 흘러 브래드 피트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이미 쉰이 훌쩍 넘은 그는 12년 전 이 영화에서 CG를 통해 구현한 중년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케이트 블란쳇은 <캐롤>을 봤을 때부터 고혹적인 연기를 하는 여배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반지의 제왕에서 엘프로 나왔을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목소리의 농도가 다른 본 투 비 배우인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발랄한 청년시절부터 노년의 쓸쓸함을 담은 연기를 물 흐르듯이 해냈다.
영화는 나이 들어 병상에 누워있는 데이지가 딸에게 한 눈먼 장님인 시계공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작된다.
왜 많은 청년들이 스러져갔는지, 왜 케이크라는 시계공이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들게 되었는지.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다면 시계공의 아들 또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벤자민의 일생기는 딸이 데이지에게 그의 일기를 읽어주며 시작된다. 케이크 씨가 만든 시계가 역에 걸리고 전쟁이 끝났을 무렵, 한 아이가 태어났다.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의 초침처럼 그 신생아는 인생의 순서를 거슬러 완연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아내를 잃은 아이의 아버지는 그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 아이를 해치려다 어떤 집의 현관문에 버리고 간다.
그 집의 주인 격인 퀴니라는 여성이 버려진 아이를 가엽게 여겨 맡아 기르게 되고, 벤자민이라는 이름도 붙여준다. 의사는 노인과 같은 상태인 벤자민이 곧 죽게 될 거라 얘기했지만, 그는 자라면서 녹내장이 사라지고 점점 더 젊어졌으며 나중에는 걸을 수도 있게 되었다. 퀴니가 운영하는 요양 보호 시설에서 벤자민은 자신과 비슷한 외양을 가진 노인들과 함께 지낸다. 그곳에서 한 노인의 손녀인 데이지도 만나게 된다.
어느샌가 뱃일을 하며 돈을 벌고 독립을 하게 된 그는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여자를 만난다. 둘은 아무도 없는 시간에 만나 대화를 하고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 여자도 남편이 있었기에 사랑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없었다. 짧은 편지를 마지막으로 둘은 헤어진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이 차이를 뛰어넘은 사랑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인도 외관과 다른 그의 순수함에 빠져들어 대화를 이어나갔을 것이다. 누가 어린 사랑은 서투를 수밖에 없다고 했나.
바다 위에서 참전까지 하게 된 그는 많은 사람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인으로 자란 데이지와 재회한다.
둘의 사랑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으나 데이지가 큰 아픔을 겪게 된 후로 함께하게 된다. 와중에도 시간이 흘러 데이지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얼굴이 변하는 것을 느끼지만 벤자민은 점점 젊은이의 외관을 가지게 된다. 둘이 나이와 모습이 얼추 비슷했던 그 시기에 데이지는 아이를 갖게 되고, 벤자민은 기쁨과 동시에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벤자민은 두 사람을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재산을 남겨두고 떠났다. 그가 더 젊어져 십대와 같은 모습을 하고 나타났을 때는 그의 딸 또한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데이지가 다시 한번 그를 만나게 되었을 때 벤자민은 이미 소년의 모습을 한 채로 치매를 앓고 있었다. 데이지는 "혼자 두 아이를 키울 순 없다"고 떠난 벤자민의 말을 기억하며 그를 돌보기 시작한다. 그녀가 노인이 되어갈 수록 벤자민은 점점 더 작아졌고, 신생아의 모습으로 숨을 거두게 된다. 일기를 읽으며, 또 데이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모든 것을 알게 된 딸이 잠깐 자리를 뜬 동안 데이지 또한 눈을 감으며 영화는 끝난다.
아무래도 한 사람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다 보니 러닝타임이 길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신파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판타지 같기도, 어쩌면 현실적인 것 같기도 한 이 기나긴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결국에는 똑같을 상황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소년의 모습으로 치매를 앓았고, 몸은 점점 더 작아져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긴 세월을 보낸 그에게 마지막이라는 시간은 표면만 달랐을 뿐 상황적인 차이는 없었다. 데이지도 두 아이를 키울 순 없을 거라 얘기했지만 종내 벤자민을 옆에 두고 돌보지 않았던가. 모든 것은 유한하다.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본인에게 달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이가 들어가는 데이지의 옆을 떠난 것은 벤자민의 배려였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녀가 젊음을 부러워했음에는 분명하니까.
어떤 장르의 영화를 보더라도 불멸의 삶 또는 늙지 않는 삶은 불행하게 나온다. 벤자민은 가까이에서 소중했던 이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행한 삶은 아니었다. 그가 사랑하는 이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떠났을지언정, 그는 그 후로도 도전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 시간적 위치만 달랐을 뿐 그도 산전수전 다 겪어봤고 그건 평범한 이들과도 다를 것이 없었다. 소년이 되어 모든 기억을 잊었을 때는 마치 연달아 꾼 꿈을 일어나자마자 잊은 것과 같은 느낌이지 않았을까. 그의 인생을 불행했다 말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사랑했던 사람의 품 안에서 마지막을 함께 하지 않았던가.
분장상을 충분히 받을 만했던 영화라고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영화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드소마] 치유라는 명목 하에 도서리는 광기 (Midsommar, 2019) (8) | 2020.03.22 |
---|---|
[패왕별희] 장국영에 의한, 장국영을 위한 영화 (Farewell My Concubine, 1993) (6) | 2020.03.09 |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 (2015) (10) | 2020.02.21 |
[왓챠플레이] 내 기준엔 넷플릭스보다 나은 스트리밍 서비스 (24) | 2020.02.02 |
[기생충] 느지막한 개인적 생각 (4) | 2020.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