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얘기를 하기 전에... 이번 주는 정말 바쁘고 많은 일이 일어난 한 주였다.
내 생에 처음으로 챔스 경기를 보나 했는데...
라이프치히 vs 토트넘 챔피언스 리그 경기가 있던 날, 30유로 (학생 가격) 주고 산 티켓을 포기했다. 왜냐고?
2주째는 인턴 일이 더 바빴고 주말에도 쉬지 못했던 탓인지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다. 심지어 목이 칼칼한 증상이 있었기 때문에 더럭 겁이 났다. 지금은 그 증상이 씻은 듯이 없어지긴 했지만. 그래서 결국 경기를 가지 않기로 당일날 결심했다.
혹시나 내가 정말 잠복기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슈퍼 전파자가 되면 어떡하나. 내적 갈등이 심해서 엄마와 동생에게 전화해서 이러이러한 상황인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고 물어봤다. 당연히도 다들 만류하는 분위기였다. 전화를 하고나니 더 가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섰다.
그 날 슈퍼바이저 K, N 두 명과 함께 점심을 먹었는데 어쩌다가 챔피언스 리그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말했다.
"사실 나 티켓 있다?"
"진짜? 그거 구하기 힘들지 않음??"
"그럴걸. 내가 구한 건 아님. 근데 오늘 안 가기로 결심했음."
둘 다 도대체 왜? 하는 눈빛으로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나는 영 찜찜하니까 안갈 셈이라고. 원하면 줄게! 라고 말하니 K가 눈을 빛내면서 "Uhhhh so interesting"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침 그날 세미나에서 발표한 invited researcher 그리고 랩원들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았다. 레스토랑에 가려고 짐을 주섬주섬 싸고 있자니 K가 정말 경기에 안갈거냐고 다시 물었다. 응 대신 저녁 먹으러 가기로 했어. 티켓 줄까? 그는 반색하며 티켓을 전해 받았다. 이름도 다르게 적혀있고 ("설마 당신 last name이 진짜 Kim이요, 하고 묻겠어?" 그가 말했다) 학생 가격으로 산 티켓이라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렇게 꼼꼼한 검사는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라이프치히가 3-0으로 이긴 날이었다... K.. 당신은 항상 나한테 친절하게 잘해주니까... 슈퍼바이저로써 너무 잘해줘서 티켓 준 거여. 배 아파하지 않을게.
이제 앞으로 예정되어 있던 경기들은 연기가 되었다. 심지어 오버워치 리그도 잠시 중단된다는 뉴스를 봤다.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하나.
퇴근하고 지나가는 길에 그날따라 사람이 북적여서 알아보니, 기생충을 재상영하는 날이었다. 엄청나게 조그만 소극장인데 그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봤다. 독일에서 정식으로 개봉했던 10월보다 지금이 관객 수가 더 많지 않을까. 아무튼 괜히 어깨가 으쓱하더랬다.
음 아 그리고 재택근무 전환은 꽤 따끈따끈한 소식이다. 오늘 오후 5시 쯤인가에 연구소 전체 메일이 왔다. 메일에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5주간 연구소에 출근할 수 없다는 소식이 담겨 있었다. 나는 물론이고 모든 랩 사람들의 멘탈이 바사삭 부서졌다. 그나마 나는 이제 시작이니까 딱히 시간에 쫓기는 일은 없다. 해봤자 Safety regulation 세미나라던가 Experimental session 등인데, 다른 연구자들의 경우엔 원래 예정되어 있던 실험이 모두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오늘부로 모든 참가자들과의 접촉을 제한하도록 지침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어차피 랩도 쓸 수 없을 거고. 내가 참가하려고 했던 월요일 실험들도 죄다 취소됐다.
K와 함께 스크립트를 수정하고 있었는데 N이 와서 그 소식을 들었나며, 어떻게 arrange 해야할지에 대해 얘기해보자고 했다. 어쨌든 다음 주부터 정상 출근을 못하는 건 맞다. 나는 5주간 뭘 하는 게 좋을지 서로 얘기하다가, 7월에 있을 시험 준비와 논문 서치, 스크립트 분석 등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음 주 중에 셋이서 카페나 바에서 미팅하기로 약속을 잡기도 했고. 그래도 여전히 막막했다. 어차피 다음 주부터 냉장고도 전원이 나갈텐데 안에 있는 맥주를 다 마셔버리자며 그들이 의견을 모았다.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 옥상으로 올라가서 과자와 맥주들을 늘어놓더라.
우리 연구소 옥상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석양이 참 예뻤다. 바람이 많이 불어 조금 추웠지만 다 같이 맥주를 마시고 얘기를 했다. 앞으로 뭘 해야할지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뤘다. 참 나도 황당하고 속상했다. 출근한지 2주만에 강제로 쉬게 되다니요.
코로나 여파가 여기까지 미칠 줄은 몰랐는데, 어느 새 독일에도 2천명 가까운 확진자가 생기고 있다. 우리 지역은 덜하다지만 마트에 가도 재고가 있어야 할 휴지 진열대가 텅텅 비어있다. 대부분의 대학들도 개강을 더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4월 말 심지어는 5월 초에 개강하는 곳도 있다고. 그 동안 실감하지 못했었지만 유럽은 이제 시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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