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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살이/독일에서 산다는 것

[병원 가기] 독일의 이비인후과, Hals-Nasen-Ohren Arzt 가기 | 돌발성 난청

 어느 날 잠에서 깨 일어나보니 왼쪽 귀가 잘 안들렸다. 꼭 비행기를 타고 고도에 접근할 때처럼 멍멍해지는 그 느낌이 들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하루 종일 그 상태가 지속되니 굉장히 불편했다. 이런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증상을 검색해보니 돌발성 난청일 수도 있다는 정보들이 보였다.

 

 돌발성 난청은 원인 불명으로 갑자기 한쪽 귀나 양쪽 귀의 청력이 떨어지는 증상을 보이며 응급 질환에 속한다고 한다. 병원을 빨리 가야하고, 치료 시기를 놓치면 영구 난청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을 보자마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심지어 바로 다음 날엔 집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어서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아니 그건 그렇고 테어민을 일주일 내에 잡을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어쨌든 예매한 버스를 타고 몇 시간 동안 이사갈 도시로 향했다. 귀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 왼쪽 귀로는 소리의 20% 정도만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그 사람이 내 왼쪽에 있으면 잘 들리지가 않아 일부러 몸을 오른쪽으로 틀어야만 했다.

 

 도시에 도착한 후 인터뷰를 하기 전에 시간이 조금 남아 그 도시에 있는 이비인후과를 가보기로 결정했다. 구글맵에서 Hals-Nasen-Ohren 이라고 검색하면 가장 가까운 이비인후과를 알려준다. 

 

 일단은 병원 접수처의 직원에게 "Können Sie Englisch sprechen?"하고 물어보았다.

 다행히도 직원은 영어를 매우 능숙하게 했고, 보험 카드를 건네 달라고 했다. 직원은 오늘 진찰을 받으려면 세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깔끔하게 당일 진찰은 포기. 바로 다음 날 오전 10시에 테어민을 잡았다. 직원은 테어민 시간이 적힌 종이를 건네주었다.

 

 다음 날 병원에 도착해 테어민 종이를 보여주고 기다리고 있자니 의사가 프라우 킴, 하고 불렀다. 진찰 의자에 앉아 의사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증상이 어떤가 하고 묻기에 미리 찾아놨던 돌발성 난청의 독일어 단어를 말했다. Plötzlicher Hörverlust. 증상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등등을 말한 뒤 귓속을 검사했다. 의사는 외관으로 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Hearing test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테스트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헤드셋을 쓰고 왼쪽과 오른쪽 각각의 귀에 특정 음을 들려준다.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시점에 손을 들면 된다. 헤드셋에서 나오는 소리는 매우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삐- 하는 가느다란 소리가 들리면 손을 들었다. 그 음의 높낮이는 저마다 달라서 주파수를 측정하는 것도 같았다.  

 

 테스트를 끝내고 30분 정도를 대기한 후에야 의사를 대면할 수 있었는데, 그는 또 다른 의사였다. 뭐 아무튼 지금까지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이며 왼쪽 귀의 기능이 조금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스테로이드제 약을 처방해 줄 수는 있는데 보험 처리가 안돼서 100유로를 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약이 또 제대로 작용할지 아닐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아직 정확하게 진단을 내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약을 처방받지 않기로 했다. 의사는 그 대신 검사 결과를 써줄테니 동네에 있는 병원에 다시 한번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나중에도 자연 치유가 되지 않으면 그 약을 복용하라는 말과 함께.

 

 

 


 

 동네에 돌아와 다시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거의 일주일 째 증상이 지속되고 있었다. 수업을 들을 때도 제대로 들리지 않아 굉장히 불편했고 이명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구글맵에서 대기 시간이 짧다는 후기가 있는 이비인후과를 찾아 갔다.

 다시 한번 "Können Sie Englisch sprechen?"을 시전했으나 직원은 "Nein"이라고 얘기하며 미안한 표정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떠듬떠듬 브로큰 절먼으로 말했다.

 

 "Ich spreche ein bisschen Deutsch. Ich habe ein Rezept aus anderen Arzt." 나이가 지긋하신 직원분은 친절하게 들어주시더니 방에서 대기하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구글맵의 후기가 정확했다. 대기 시간은 5분을 채 넘기지 않았다. 독일에서 테어민 없이 이런 짧은 대기 시간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아무튼 다시 의사와 대면했고 또 다시 테스트를 하기로 했다. 전의 병원에서 한 것과 동일한 테스트였다. 이번엔 손을 드는 게 아니라 버튼을 누른다는 점에서 조금 달랐지만. 테스트를 진행하는 직원분께서는 감사하게도 천천히 독일어로 말씀하셨다. Brillen을 벗어달라는 얘기 등등은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다행이었다. 아무튼 이번에도 별 큰 이상은 없다는 이야기가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귀가 잘 안들리고 이명 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했지만 노말하다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찜찜하지만 이미 두 군데 모두가 정상이라고 했으니 더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의료 체계에 불신을 품고(?) 집에 돌아왔다.

 

 

 신기하게도 이틀 정도가 더 지나자 왼쪽 귀의 상태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기뻐 죽을 지경이었다. 그 동안 걱정을 정말 많이 했었다. 정말 평생 난청이 지속되면 어떡하나, 귀가 안들린다는 게 이렇게 불편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등등. 자연 치유되는 경우도 있지만 왠만하면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너무 다행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달고 살던 무선 헤드셋을 사용하지 않게 됐다. 평소에 등하교 할 때나 공부할 때 노래를 듣곤 했었는데 이젠 맨 귀로 다닌다. 또 늘 ASMR을 꼭 들으며 잠에 들곤 했는데 그 습관도 고치게 됐다. 그 동안 귀를 너무 혹사시킨 나에게 원인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독일에 온 후로 한국에 있을 때보다 잔병치례는 덜 하게 됐는데, 가끔 이런 일이 생기면 병원 가는 게 참 무섭다. 의사소통도 어렵고 아무래도 당일 치료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늦기 전에 꼭 가서 체크하는 것이 병을 키우지 않는 방법일 것이다.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