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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살이/독일에서 산다는 것

이베이 클라이안짜이겐에서 사기를 당하다 (eBay Kleinanzeigen)

 작년 초여름 쯤, 나는 게이밍 노트북을 망가트렸다. 와인을 마시다가 그대로 키보드판에 엎질러버린 것이다. 몇주를 바짝 말렸지만 주요 부품이 아예 침수되었는지 전원이 들어오지도 않았다. ASUS 서비스 센터에 맡기는 방법도 있었지만 liquid damage는 무상 수리가 안된다고 했다. 인건비가 높은 독일 특성 상 중고 노트북 값 정도가 청구될 것 같아서 그냥 나중에 고쳐야지 미루다가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2월 달에 이사를 가는데 보증금이 450유로였다. 못낼 금액은 아니었지만 한달 동안 꽤나 쪼달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큰 돈을 갑자기 마련하는 방법엔 뭐가 있을까 궁리하다 생각난 게 고장난 노트북을 파는 것이었다. 이베이에는 고장난 전자기기를 파는 셀러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나도 마음먹은 김에 바로 판매글을 올리기로 했다.

 

 

 

 

 글을 올린지 10분 정도 지났을 때였을까 세명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그 중 460유로 + a 로 입금하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왓츠앱으로 연락하기로 하고 판매글 게시를 중단했다.

 

 

 

 

 그리고 리터럴리 우리가 나눈 수많은 대화들... 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독일어로 얘기하는데 네이티브가 아닌 느낌? 물론 나도 번역기를 돌려서 답장했다. 아무튼 안전하고 꼼꼼하게 포장해달라고 하길래 알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8시부터 연락이 와서 닦달하길래 한숨 한번 쉬고 Baumarkt에 완충재를 사러갔다. 포장된 모습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줬다. 그날 미팅이 있어서 택배는 오후에 보내겠다고 하니 알겠다며, 점심 쯤에 송금해주겠다 했다. 

 

 

 테스코 은행에서 메일이 왔다. 이게 원흉의 시작이자 내 눈썰미를 믿지 못하게 된 계기다. 그놈은 international transfer라 내 계좌에 돈이 들어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 거라 했다. 사실은 이 메일을 보면서도 찜찜함이 마음 한 구석에 계속 자리하고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내 감을 믿기로 했다.

 

 

 

 

 오후에 우체국으로 가서 익스프레스로 배송을 보낸 후 receipt도 찍어 메세지로 보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는데 이 자식이 갑자기 주소를 바꿔달랜다. 배송 보낸 직후인데, 똥개 훈련도 아니고? 짜증이 났지만 다시 우체국으로 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주소를 바꿨다. 

 

 

 

 이 때부터 사기꾼이 스무스하게 영어로 메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제 이 사건 포함해서 이때까지의 내 경험상, my friend blablabla 하는 사람은 의심부터 할 필요가 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이메일을 재확인했는데... 맙소사. 저 테스코 은행에서 보냈다는 영수증에 적힌 내 IBAN 코드가 완전히 틀렸다. 나는 곧바로 다시 우체국으로 갔다. 그러나 이미 택배는 떠난 상태였고 창구에 있는 직원들은 본인들 업무가 아니니 고객 센터에 문의해보라고 했다. 이때 너무 허탈해서 잠깐 울었다. 나는 내가 이렇게 허술한 사기에 걸려들지 몰랐다. 

 

 집으로 오는 길에 DHL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피싱을 당했으니 택배 배송을 중단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런데 international express는 배송 중단이 안된다는 얘기가 돌아왔다. 혹시나 해서 플랫메이트와 친구에게 부탁해 고객센터에 다시 물어봐 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워낙 독일이 케바케의 나라다 보니 상담원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두명도 각각 안된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난 곧장 사기꾼에게 2시간을 줄테니 입금해라, 그렇지 않으면 바로 신고하겠다고 말했다. 열통이 넘는 전화가 왔고 사기꾼은 계속해서 미안하다는 메세지를 보냈다. 왜 자꾸 my friend라고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영어가 엉망인 걸로 보아 이민자인 것 같았다. 내가 너 꼭 추방시킬 거라고 말했다. 물론 이런 사기로 추방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던져놨다. 통화도 몇번 했는데 얘는 뭐 할 수 있는 말이 you know what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진짜 말 그대로 you know what, you know what, you know what... 이걸 기본으로 세번은 연달아서 말했다. 그래서 그냥 그때 이후로는 전화를 안받았다. 텍스트는 증거로 남기려고 일부러 차단하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은행에 가겠다는 글을 보고 안되겠다 싶어 신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다. 일단 이 사기꾼과 관련된 주소 두 곳이 모두 영국이니까 영국에 신고를 해야했다. Action Fraud UK라는 이 사이트 https://www.actionfraud.police.uk/에서 영국 내의 피싱, 보험 사기 또는 개인 정보 유출 등등을 신고할 수 있다. 

 

 

 

 

 회원 가입을 하고 레포트를 작성해서 제출하면 된다. 신고 처리는 최장 28일이라는 기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 웹사이트에서 여러 언어를 지원하고 있으니 한국어로도 신고가 가능하다. 사기꾼의 정보를 알고 있다면 모두 적어 놓자.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사기꾼의 주소와 이름, 전화번호 등등을 적어 제출했다. 문자나 이메일 등 증거가 될만한 내역들도 저장해 놓는 것이 좋다. 경찰이 증거 제출을 요구할 때 그 내역들을 보내면 된다고 한다. 

 

 

 

 사기꾼의 주소와 근접한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는데 일단 독일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것이 나을 것이란 이야기가 있었다. 독일 경찰이 영국 경찰에 접수된 신고 내용을 전달해서 협력이 이루어질 거라고. 그래서 온라인 폼을 이용해 살고 있는 도시의 경찰서에도 신고를 접수했다. 

 

 

 그리고 계속 오는 왓츠앱 메세지를 무시하고 - 심지어 새 번호로 또 연락이 왔다 - 평온하게 살고 있던 내게 오늘 온 어이없는 메일. 

 

 

 

 

 아무리 나를 만만하게 봤어도 그렇지 두번이나 속여먹으려고?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일단 그 감정은 나한테 당장 득이 될 게 하나도 없으니 가까스로 가라앉혔다. 그놈이 또 내게 메세지를 보냈다. "I am almost at the bank now. Did you get an mail from the bank?"

 너 아직도 내가 바보라고 생각하냐? 니가 오늘 보낸 메일이 또 다른 증거가 될 거고 더 높은 형량을 받게될 거다, 라고 하니 그놈은 You are mad 라고 했다. 응 맞아 나 미쳤어. 마지막으로 욕을 박고 차단했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원래부터 없었던 돈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사기치는 사람이 잘못한 거지 속은 사람이 잘못한 건 아니니까. 앞으로는 계좌에 돈이 들어왔는지 먼저 확인하고, 내 이반 코드도 꼼꼼히 살펴볼테니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돈은 꼭 돌려받으리라 다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