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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때 쓰는 일기

대량 잡채를 생산하다

 어제 드디어 잡채 day를 무사히 끝냈다. 한인 마트에서 참기름을, Aldi에서 채소들을 사 왔다. 정확히 몇 인분 치를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250g짜리 당면 네 개를 썼고 당근 1kg와 시금치 다섯 또는 여섯 단 정도, 주키니 1kg, 버섯 세 소쿠리, 마늘 20~30알 정도, 양파 한 망을 손질했다. 물론 다 나눠서 손질했기 때문에 수월했지만 당근 1kg은 혼자서 얇게 썰어야 했다. 당근은 또 어찌나 단단하던지. 아마 40인분 정도는 됐을 것이다.

 

 나와 또 한국인 친구 한 명이 셰프가 되어 요리를 도맡아 했다. 4~5인분 정도의 요리는 해본적이 있어도 대량으로 요리를 하는 건 또 처음이라, 간을 잘 맞출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손질한 채소를 각각 나눠 엄청 큰 팬에다 볶고 소금 간을 했다. 양념장은 친구가 만들었다. 간장을 총 16 스푼 넣었다고 한다. 요리를 하는 와중에 몇몇 사람들이 저번에 먹었던 잡채가 너무 맛있었다며 관심을 보여대는 통에 더 긴장이 됐다. 

 

 백종원 선생님 레시피를 틈틈히 보며 간을 맞추고, 당면도 충분히 불린 뒤에 끓였다. 6시부터 시작한 요리를 8시에 맞춰 내보여야 했다. 간신히 시간을 맞춰 잡채를 해냈는데 문제가 생겼다. 잡채와 곁들여야 할 밥을 따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밥 담당이었던 사람이 착각해 취사 시작을 안 한 것이었다. 우리 잘못은 아니었지만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30분은 더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괜히 걱정이 됐다. 떠버린 시간에 파전도 만들기로 했다. 

 

 

 

 겨우 밥이 다 되고 나서야 배분을 시작했다. 굉장히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마지막으로 내 그릇에 잡채를 옮겨담고 나니 잡채 통이 텅텅 비어있었다. 요리를 끝내고 여유있게 먹어봐야지 했는데 Keine Nudeln 이라는 소리를 듣고 잠시 얼마나 좌절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조금은 남아있었기에 망정이지. 9시가 넘어온 사람은 잡채를 먹어볼 수 없었다. 그래서 구운 파전만 담아줘야 했다. 바삭바삭하게 구워졌었으니 아마 만족했을 것이다. 밥 때문에 식사 시간이 늦어진 거였는데, 또 밥이 설익어 말썽이었다. 한 사람은 잡채만 먹고 밥은 음식물 쓰레기통에 몽땅 버렸다. 

 

 그래도 오랜만에 먹어보는 잡채는 적당히 짭잘하면서 고소하고, 정말 맛있었다. 저번에는 잡채가 많이 남아서 남은 건 요리한 사람들이 포장해 갔다고 했는데, 이번엔 사람들이 많았던 건지 남는 게 없어 그럴 수가 없었다. 다들 맛있다고 해주니 뿌듯했다. 물론 주방에서 먹느라 밖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맛있었을 거다. 늬들 잡채 처음 먹어보지~? 

 

 

 전쟁통 같던 하루였다. 오후 5시에 가서 새벽 1시에 집에 돌아왔는데 온 몸에서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몇 시간 동안 칼과 불을 이용하고, 주걱으로 볶음을 만들어 내느라 팔에 근육통이 왔다. 다들 맛있게 먹어줬다면 만족한다. 하지만 손이 이렇게 많이 가는 잡채를 대량으로 하는 건...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냥 다음에는 비빔밥을 하는 게 어때... 아니 그것도 어차피 똑같은 방법인 건가... 

 

 솔직히 김치볶음밥을 해주면 다들 넘어갈 것 같긴 한데, 김치가 너무 비싸서 예산 초과일 것 같다. 그리고 비건 식당이라 고기가 들어가거나 육수가 들어가는 요리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리밋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 카레를 하거나 스튜같은 걸 요리한다. 그거 말고 뭔가 다른 좋은 수는 없을까. (물론 당분간은 요리사 안 할 예정)

 


 

 +) 우리가 참고한 백종원 선생님 잡채 레시피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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