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평일 포스팅은 인턴 일기(?)로 점철될 것 같다. 자전거가 고장 나서 출퇴근을 걸어 다니면서 하고 있는데, 편도 4~50분 정도가 걸려서 집에 오면 뻗어버리고 만다. 자전거는 원래 오래된 자전거라 공짜로 빌렸는데 빗길에 약간 미끄러졌더니 페달이 헛돌아간다. 그래도 걷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 오늘도 해가 어스름히 지는 길을 걸어오는데 그냥 그게 좋았다. 생각을 많이 정리할 수 있기도 하고.
아침에 그룹 미팅을 했는데 내 맞은편에 각각 60퍼센트 정도를 닮은 아라곤과 에단 호크가 앉아 있었다.
처음 참가한 미팅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어떤 공부나 연구를 했는지에 대해 내 소개를 간략하게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프로젝트 진행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미팅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다. 역시 한국에서 참여하던 랩미팅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에 대해선 나중에 차차 생각하고 정리해봐야겠다. last name이 Kim이라 하니까 바로 Korean이냐 묻는 박사님이 계셨다... 역시 흔한 성씨인가ㅋㅋㅋ
미팅 장소에 한참 옹알이를 하는 아이를 데려온 사람도 있었다(건후 닮음). 아이를 데려오는 건 오늘이 처음이라고, 한번 시도를 해본 거라고 했다. 괜찮은 거 같으면 앞으로도 계속 데리고 오고 싶다며 의견을 물었다. 아기 엄마도 여기서 근무하는지 서로 파트타임으로 아이를 맡을 생각이라고 했다. 이렇게 직장에 아이를 데리고 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웠다. 아기가 가끔 큰 소리를 내도, 그 누구도 방해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기는 엄청 순해서 한참을 혼자 놀며 옹알대다가 나중에는 바닥에 누워 잠을 잤다. 잠을 깨고 나서는 자꾸 나랑 눈만 마주치면 웃는데 정말 너무 귀여워서 벽을 부수고 싶었다. 다 뿌셔뿌셔ㅠㅠ 혼자 책상 밑으로 기어와 내 무릎을 잡고 서서 나를 쳐다보면서 방긋방긋 웃는데 미팅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너 왜 그렇게 귀여운 건데. 9시 반에 시작한 미팅은 11시가 훌쩍 넘어서야 끝이 났다.
어제랑 오늘은 N이 하는 실험에 참관했고 다음 주쯤부터 직접 실험 어시를 할 것 같다. 실험 자체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서 할만할 것 같다. 근데 stimulation을 준 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보내야하는 10분이 여간 지루한 게 아니다. 눈이 풀린 채 앉아있는데 N이 당이 필요하냐면서 스무디를 건네줘서 고맙게 마셨다. 여기에서 피험자를 모집하는 건 쉬운 일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병원과 연결되어 있어서 환자들이 실험에 많이 참가하는 것 같다. 어제는 5살 때부터 이 연구소 실험에 참가해왔다는 청년을 만나기도 했다. 거의 전문가 뺨치는 피험자다.
이 연구소를 포함해서 각각 다른 연구소 세 군데를 가본 셈이 되었는데 (한 군데는 학교 랩이었으니까 제외하자면), 연구소는 서로 공유하는 특유의 냄새가 있는 것 같다. 신기하게도 우리 부서는 드라이 랩이라 딱히 화학물 냄새가 날리 없는데도 다른 연구소에서 맡을 수 있는 그 무언가의 냄새가 난다. 향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네. 그 냄새가 좋다.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말하자면 좀 길긴 한데, 슈페어콘토(Sperrkonto)라고 한 달에 한 번씩만 출금이 가능한 blocked account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외국인 학생이라면 슈페어콘토가 있어야 비자 발급이 가능한데, 슈파카쎄(Sparkasse)에서 만든 슈페어콘토는 다른 지역에서 사용할 수가 없다고 한다. 물론 여기까지의 내용은 이사 오기 전에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사 직전에 몇 번이나 은행을 간 거였다. 직원마다 하는 말이 다른 게 너무 화가 난다. 콘토 buch과 Meldebescheinigung을 보내면 슈페어콘토 해지를 해주겠다더니, 답이 없길래 다시 메일을 보내보니 "I'm sorry that you received different information."이라는 답장이 돌아왔다. 너무나 복장 터지는 것... 그래도 다행인 건 외국인청에서 계좌 복사본을 보내면 은행에 콘토 해지를 요청하는 레터를 써주겠다고 답장해준 것이었다. 외국인청도 갔었는데 그곳 직원도 이상한 정보만 말해줬다. 아니 도대체 얘네는 통일된 뭔가가 없는 건가? 독일에서 일 잘하는 사람 찾기는 하늘에서 별따기인 것 같다. 정말로.
아무튼 이런 연유로... 이번 달에 사용해야 하는 생활비를 출금하지 못하고 있다. 첫날 카페테리아에서 기함한 이후로 어제오늘 빵을 따로 챙겨 와 점심으로 먹었다. 오늘도 빵과 커피를 챙겨 소파가 있다는 위층으로 올라갔는데 거기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우리 랩의 중국인 학생들을 만났다. 그들이 내 빵을 가리키며 "그걸로 점심이 되겠어?" 묻길래 저렇게 은행의 부당한? 일처리를 고자질했다. 다들 필요하면 돈을 빌려줄 테니 꼭 말하라고 당부해줘서 너무 고마울 따름이었다. 100 유로면 괜찮겠냐고 그러길래ㅋㅋㅋ 정말 위급한 상황이 오면 빌리겠다고 말했다.
실험 참관을 하고 나서 오후 6시까지 논문을 읽었다. 4시쯤엔 나른해져서 그런지 글자들이 머릿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튕겨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풀어지면 안 된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하며 논문과 투쟁을 벌였다. 6시쯤 K가 논문을 다 읽었냐고 물어왔고 우리는 데이터를 보며 의견을 나눴다. 오늘 막 처리한 따끈따끈한 데이터를 봤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뚜렷하게 나와서 K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퇴근을 하고 나서 여기 정말 좋다! 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사람들이 좋고 배우는 것이 좋다. 질문을 하면 귀찮아하기는 커녕 더 열심히, 다른 것까지 알려주려는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어디에서 왔냐'가 아닌 '무엇을 공부했고 어떤 연구를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는 게 좋다. 오버하는 것 같지만 여기에선 동등한 한 인격체로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
석사를 할 때 다니던 학교에서는 나는 일단 '아시아인'이었다. 그게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이었고, 나와는 은연중에 거리를 두려고 하는 의도가 보이곤 했다. 시험 기간엔 친한 척하며 다가오긴 했지만 그게 친구 관계는 아니잖아. 우리 과가 좀 특이한 것일 수도 있다. 학과 내에선 친구가 한 명밖에 없었지만(그도 멕시코인) 플랫메이트들과 탄뎀 친구는 너무너무 좋았다. 다른 곳은 좀 다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런 단단한 벽을 2년 동안 눈 앞에 두고 살아왔었다. 학교에만 가면 숨이 막히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여기로 오기로 마음먹어서 정말 다행이다. 어쩌면 최악을 겪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더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진짜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해서 이 좋은 사람들과 좋은 결과를 얻어내고 싶다.
그리고 댓글로 응원해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쓰는 글마다 공감해주시고, 위로와 응원을 해주셔서 늘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편이 아닌데도 (저는 정말 저를 사랑합니다...) 제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지지를 해주시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가끔 들지만, 정말 많은 힘이 됩니다. 다들 복받으시고 좋은 일들만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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