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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때 쓰는 일기

코로나가 바꿔놓은 일상

 오늘은 슈퍼바이저 집으로 출근했다. 사실 출근은 아니고, 진행 경과보고와 이것저것 논의하기 위한 미팅이었다. 독일의 국경이 폐쇄되었고, 식료품점, 은행 등을 비롯한 생활에 필수적인 가게들만 문을 열고 나머지는 문을 닫게 되었다. 불가피하게 집에서 볼 수밖에. 5주간 쉬게 된 만큼 갑자기 일상이 느슨해졌었는데 그나마 할 일이 생겨서 다행이었다. 독일 전역의 대학 개강일이 늦춰졌고, 그에 따라 학사 일정도 미뤄질 것이다. 하나 남은 시험도 아마 연기되겠지. N은 이 시국(?)에 대한 exception이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고, 그냥 바로 논문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잘 모르겠다. 슈퍼바이저들이 태연하니 나까지 태연 해지는 느낌적인 느낌. 그래도 내 상황에 대해서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계획도 굉장히 클리어하게 세워주고. 다른 학생들은 외부 논문을 쓰러 갈 때마다 찬밥 신세가 되곤 해서 6개월을 헛으로 날리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어쨌든 빨리 실험을 시작하고 싶다.  

 

너네 쉬는 거 아니다 평소처럼 일해라... 라고 온 메일

 

 나만 초조한가 사람들은 그저 여유롭다. 지난 주말부터 날씨가 갑자기 따뜻하고 화창해졌다. 그래서 외출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는데, 정말로 사람들이 풀밭에 블랭킷을 깔고 피크닉을 즐기고 있다. 이 사람들아 그러라고 재택근무하라는 지침이 내려온 게 아니란 말이다... 이미 우리 주에 200명이 넘는 확진자가 생겼는데 왜 이리들 여유로울까. 

 

 여전히 마트에서는 휴지를 찾아볼 수 없다. 거의 매일같이 마트를 들렀는데 휴지 칸은 텅텅이다. 물론 쌀도 찾기 힘들다. 맛없는 Vollkornreis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내 플메는 사람들이 왜 바보같이 hamstering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hamstering이라니 너무 귀여운 표현인 것. 아무튼 우리는 세 명이서 화장실 하나를 쓰기 때문에 휴지가 금방 동날 것 같다. 내일은 아침 일찍 마트를 가봐야겠다. 그래 봤자 또 허탕 치겠지만. 유학생 네트워크에서는 노약자들과 장애인들이 휴지나 비상식량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호주에서는 따로 노약자와 장애인을 위한 개방 시간을 따로 정해두기도 했다고 한다. 이 바이러스로 인해 얼마나 일그러진 사람들의 민낯을 보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민낯, 이라고 타이핑하자마자 생각난 어제 일. 라면을 사러 아시안 마트로 가는 길이었다. 신호등이 초록색일 때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어떤 한 차가 10m 내에서 갑자기 속력을 훅 내더니 내 바로 앞에서 급정거를 했다. 나는 원래 놀라도 겉으로 내색을 잘 안 하는 편이라 겉으론 태연한 척했는데, 아마도 겁을 줄 심산으로 속도를 낸 것 같았다. 너무 화가 나서 운전자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정말로 나를 치어버릴까 봐 차마 욕을 할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쭉 가는 길에 자전거를 탄 (한쪽 팔이 없는) 한 중년 남자가 내 얼굴에 본인 얼굴을 들이대고 뭐라 소리를 지르고 그대로 갔다. 라면을 사고 나오는 길에는 한 자동차가 멀찌감치 정차하더니, 한 여자가 창문을 내리고 코로나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신속하게 중지를 들었다. 본인도 중지를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가버렸다.   

 확실히 외국인, 특히 동양인에 대한 혐오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그걸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건 슬픈 일이다. 그들의 이중성이 웃기기도 하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겐 It's your fault, 이탈리아에겐 pray for Italy. 그냥 이 시기를 핑계 삼아 본질적인 혐오를 표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렵다.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된 바꿀 수 없는 특징으로 누군가를 차별한다는 건 겪어보지 못하면 모를 일. 그들도 마찬가지로 깊은 이해 없이 본인의 분노를 우리에게 초점두어 분출하는 것이리라. 물론 나조차 자국에서 계속 살고 있었다면 몰랐을 단면이기도 하다. 완전히 없어지기는 힘들고, 매번 맞서 싸우기도 어려운... 그래서 요즘은 외국인으로서 겪는 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겪을 고난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양하는 자세는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것이다. 나는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 내가 겪는 상처들을 남에게 떠넘기고 싶지도 않다. 겪어봐야 안다는 말은 너무 단언적이고 좁은 사고다.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더 많이 생각하고 읽어야겠다. 나부터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