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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때 쓰는 일기

임동혁 피아니스트에 대한 추억 하나

 가끔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감사할 때가 있는데 오늘이 또 특히 그랬다. 이 채널, 레이어스 클래식의 최근 영상인 <마왕 + 왕좌의 게임> 곡을 듣고 바로 구독 버튼을 눌렀다. 비틀즈, 이루마 등등 예전에 많이 듣던 노래들이 흘러나오길래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염없이 들었다.  

 

www.youtube.com/watch?v=YrNURj4cHQ

 

   중학교 음악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임동혁 피아니스트의 연주 영상을 보여주신 적이 있다. 반 친구들은 그의 집중한 표정에 웃음을 터트렸지만 나는 그 순간부터 임동혁을 좋아하게 됐다. 그건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팝송과 락의 세계를 지난 후 다시 시작한 덕질의 순간이었다. 한달 용돈이 3만원이었을 시절, 다른 것들을 포기하고 그의 음반들을 사들였었다. 집에서 공부할 때면 늘 그의 쇼팽을 틀어놨었다.  

 

  그러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 임동혁의 리사이틀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엄마는 사실 내가 클래식을 접하게 됐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계셨기 때문에 기꺼이 리사이틀 좌석을 예매해주셨다. 무려 8만원의 좋은 좌석이었다 (내 3개월치 용돈..!). 리사이틀 연주장으로 향하던 그 날의 쌀쌀함까지도 여전히 생생하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려 공연장에 도착했다. 물론 바흐에 관심이 없었던 때였지만 혼자 들어가 좌석을 찾던 그 순간까지도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피아노와 내 좌석까지의 거리는 꽤 가까웠다. 조금 오른쪽에 위치했던 터라 타건을 볼 수는 없는 자리였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어느 순간 실내는 안내를 따라 완전히 조용해져 있었다. 예측하지 못한 타이밍에 임동혁이 으레 입는 검은색 의상으로 터벅터벅, 피아노가 있는 무대 중앙으로 걸어들어왔다. 그 때의 임동혁은 클래식계의 아이돌... 같은 느낌이었다.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고, 내가 공연 이후 좋아하게 된 BWV 1004 부조니 편곡을 연주했다. 그는 연주를 끝내고 쏟아지는 박수에 허리 숙여 화답했다. 옆에 앉아 있던 여자분은 연주 내내 뭐가 불만이었는지 앵콜곡이 시작하기도 전에 ㅡ 아니 커튼콜을 할 때부터 ㅡ 못마땅한 표정을 한 채 자리를 떴었다. 그냥 내 추측인데, 오빠 부대가 마음에 안들었던 것 같다. 나는 그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만 아는 아티스트였음 좋겠고 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몇번의 커튼콜 뒤에 그는 피아노 앞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어떤 잔잔한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가 바흐를 연주할 때만 해도 이상하게 붕 떠있는, 현실같지 않은 감각이 지배적으로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앵콜곡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모든 감각이 다 깨어나 몸이 확 식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따뜻한 곡이었는데 굉장히 차갑고 날서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몸이 오들오들 떨렸던 것 같다. 그 앵콜곡이 저 유튜브 영상에서 나오는 곡과 같은 <시대를 초월하는 마음>이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꿈같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던 걸지도 모른다. 아무리 박수를 쳐도 더 이상 그가 다시 나오지 않을 때 공연이 막을 내렸고, 나는 몸을 계속 오들오들 떨며 약간은 허망한 그런 기분으로 건물을 나섰다.  

 

 그 후 구오빠가 된(?) 임동혁의 소식을 몇년에 걸쳐 접했을 때, 나는 그가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빌었다. 그 뒤로 공연장을 간 적은 없었지만 후기를 읽으면서 같이 마음 아리기도 했었더랬다. 그러던 지난 2018년 여름, 3개월 정도 한국에 있을 때였다. 나는 인턴을 하던 랩실 사람들과 함께 서울에서 열린 테드톡을 갔다. 거기에서 임동혁을 만났다. 그를 실제로 다시 본 건 거의 10년만이었다. 앳된 티가 없어진 그는 식전 연주를 위해 왔는데, 자기가 왜 과학 관련 컨퍼런스에 초대받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며 사람들을 웃기는 인삿말을 건넸다(ㅋㅋㅋ). 그는 피아노에 앉은 후 내가 음반에서 듣곤 했던 곡들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추억이 그렇게 강력한 줄 모르고 있었다. 연주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아련해지는 건... 괜히 울컥하기도 하고 옛사랑 만난 것처럼 들뜨기도 하고 그랬다. 그리고 여전히 연주는 너무나도 좋았다. 혼자만의 내적 친밀감이 극에 달했고 스스로도 참 드라마틱한 일이라고, 조용히 생각했다.   

 

 예전엔 그랬다. 사람이 차가우면 안된다는 강박관념같은 것이 있었는데, 뭐 살다보니 나 자체도 날카로워지는 면이 있긴 하다. 임동혁의 주변 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실제 성격이 어떤지 알 수는 없지만, 항간에 떠도는 카더라에 의하면 그가 좀 까칠하다는 얘기가 있더라. 나는 그가 차라리 까칠하고 단단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모든 역경을 여유있게 털어버렸으면 좋겠다.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블로그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지 고작 8개월만이지만, 뭔가를 기록하고 싶다는 열망이 이렇게나 클 줄은 또 이렇게까지 참을 수 없을 줄은 몰랐다. 모든 오해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계속 시간은 흐르고 있고,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질 것들이 아까워 다시 취미로나마 즐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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